스티브 잡스 이후 인문학이 부상하고 있다. 인문학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사람의 가치와 역할, 본성에 대해서 살핀다. 스티브 잡스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문학적인 감수성 덕분이었다. 사람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잘 알면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공부를 많이 해야 할까,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할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방랑이다. 방랑은 정해둔 목적지나 목표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님이다. 목적이 없기에 생산성이나 능률성을 추구하지 않는다.우리가 세상에 목적을 가지고 오지 않기에 방랑은 삶에 아주 적합하다. 사람은 방랑을 통해서 세상을 탐색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일을 잘하는지 발견한다. 방랑은 자기탐색의 과정이다. 자기를 알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감도 잡을 수 있다.
방랑이라는 키워드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고은 시인이다. 그는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되고 문단에서는 구인회(九人會)가 만들어진 해에 태어났다. 올해 여든이다. 그는 삶은 “내가 살아온 시대의 여러 상황 아래 나의 역정(歷程)이 있다”고 인정할 만큼 한국 현대사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사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시대와 연관을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시인은 굴곡 깊은 역사를 고스란히 겪었고 그로 인해 바람 같은 삶의 주인공이 된다.
자기를 탐색하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태어난 농부의 갓난아기에게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어린 시절을 깡보리밥이나 옥수수죽으로 연명해야 했다. 가난 속에서도 꿈은 있어 서당에서 『소학』과 『논어』를 배우고 아홉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그때부터 한글 시간이 사라지고 일본말을 배우게 된다. 본명인 고은태 대신 다카바야시 도라스케가 그의 이름이 되었다.
해방이 되고 사람들은 친일파 면장 집에 불을 질렀고, 굶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을 새겼다. 그것도 잠시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비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래의 남북 소년병들은 학도병과 인민군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다 죽었다. ‘죽음과 삶이 똑같이 비극이었던 시대’를 견뎠다. 그의 작품 전반에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열일곱 시절 꿈이 있었다. 외삼촌집에서 고흐의 그림을 본 후 고흐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국전쟁은 그의 꿈을 포화 속으로 흩어놓았다. 군인들의 명령으로 시체를 파내서 옮기는 작업을 하고 나면 보름 동안 씻고 또 씻어도 시체 냄새가 몸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죽음의 냄새가 그의 가슴에 흡착된다. 정신착란에 시달렸고 자살시도도 여러 번 있었다. 삶은 부서졌고 무자비한 현실 속에서 휴전선 이남의 밤과 낮을 떠도는 긴 방랑의 계절이 찾아왔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시인이 되었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된다. 쏟아낸 작품들의 양도 엄청나다. 그 원천을 알 것도 같다. 비참한 현실과 삶에 대한 회의, 죽음에 대한 탐색, 실존의 방랑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작품세계를 만들어주었다. 누구보다 자신을 깊이 탐색해 본 덕분이었다.
화살이 되어 가자
그가 처음 세상에 내놓은 '폐결핵'이라는 작품은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게 쓴 시 치고는 죽음의 향내가 너무 짙다. 역사의 짓이다. 한국전쟁 후 견딜 수 없는 혐오 때문에 1952년 출가를 했다. 1957년에 전등사 주지를 지냈고, 1958년 '불교신문'을 창간해 주필을 맡기도 했다.
이후 그의 삶은 환속과 세상에 대한 참여로 이어진다. 1970년대 그의 문학은 참여였다.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현실로 끌어올린 것은 죽음이었다. 전태일의 죽음이 그를 현실에 눈뜨게 만들었다. 가혹한 노동과 착취의 현장을 발견하고 총검과 탱크의 시대 속으로 자신을 던졌다. 덕분에 작가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독재를 견디어내는‘일상 체념과 방관의 일상이야말로 독재의 온상’이라며 붓에 날을 세웠다. 그의 현실참여는 80년대의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격렬해졌고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는 전사의 목소리로 변한다. 감옥살이도 참 많이 했다. 70년대에 두 번 있었다. 1980년에는 김대중내란음모죄에 연루됐다. 또다시 죽음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1988년에는 남북작가회담을 추진하다가 또 감옥에 갔다. 참여는 시인에게 실존의 고통을 정면으로 돌파할 힘을 주었다.
사람은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되면 자기에게 갇힌다. 삶이 작아지고 고통스럽게 변한다.지금 우리 모습이 딱 그렇다. 힘들다고 말만 하지 그 고통속에 뛰어들 생각은 없다. 힘든 세상에 뛰어들어 참여할 때 삶의 다른 면도 발견된다. 참여는 현실에 직면할 힘을 준다.
달빛과 바람
문학의 주제가 ‘달빛과 바람’이라고 밝힐 만큼 시인의 삶에는 방랑자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다행히 그는 방랑을 통해 얻은 진실을 슬픔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되가져왔다.그 통로가 시였고 문학이었다. 그에게 보내는 세계문학계의 찬사는 역사가 던진 깊고 어두운 방랑의 길을 다 겪고 온 나그네의 모습에서 삶의 진실을 엿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방랑이 허락되지 않는 시대다. 부모는 공부 외에 딴 짓을 하지 못하게 감시하고,회사는 일 외의 것은 집에 가서 하라고 한다. 그들은 모른다. 방랑하지 않은 자, 외딴 길과 외로운 내면을 탐색해보지 않은 자들의 가슴이 얼마나 빈곤한지. 그 빈곤을 채우기 위해 먹고 사는 것과 주머니를 채우는 것에 더 집착하게 된다는 것을.
마음의 빈곤을 채우려면 방랑의 길밖에 없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탐색이 없다면 한판 제대로 살기는 힘들 것이다. 기껏해야 먹고 사는 정도일 뿐. 시대가 요구한다는 직관이나 통찰력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방랑에 기초한다. 자기를 알아야 남도 알고 세상도 안다. 인문학이 희망이라지만 지식을 위한 인문학이라면 가능성이 없다. 인문학은 니체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세상과 자기 속으로 길을 내는 것이다. 긴 방랑의 길을.
news.kyobobook.co.kr
|
No comments:
Post a Comment